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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가이 첫걸음 안내/2 . 한국 이소가이 건강법

펌.맨발의 의사들

http://www.youtube.com/watch?v=xMNg7UxSVgg



맨발의 의사들 [7]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ding****)

주소복사 조회 1148 10.07.20 14:28 신고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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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카스트로라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라고 배웠다.   그러나 쿠바는 우리가 알지 못한일을 지금까지 조용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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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장애인들이 베네수엘라 대통령궁에 모여있다. 이들은 쿠바에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가난한 장애인들로 쿠바에서 치료받는 모든 비용과 비행기등은 쿠바에서 부담한다.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80%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당선으로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는 가운데 쿠바의 의료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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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오 아덴트로 : 2003년 시작된 베네수엘라 빈민지역 의료시설 건립프로그램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의료개혁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2006년 쿠바의사 4천명을 파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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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와 체게바라에 의해 쿠바혁명이 성공하자 당시 쿠바에 있던 의사 6천명중 절반정도인 3천명이 미국으로 도망간 상황에서 혁명정부는 열악한 상황속에 쿠바국민들의 의료를 책임져야 했다.  쿠바의 의료가 선진국수준으로 발전할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경제봉쇄라고 한다.  쿠바의 의사들은 고장난 의료장비도 고쳐서 계속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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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의료시스템의 3단계로 매우 단순하게 구성되었다 한국과 좀 다른점은 1차 가정의에 대한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대부분 질병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 이유가 가난과 무지에 의해 질병초기 치료를 할 경우 병이 악화되기전에 치료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쿠바의 가정의의 경우 한국의 전문 간호사수준의 의료지식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각 가정에 세부적인 사항을 파악하여 가족진료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어있다.  쿠바에서 가정의는 쿠바의료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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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이후 세계 101개 나라에 연인원 10만명 이상의 의사를 지원했다.   한국가가 40년이 넘는 기간동안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들 특히 그곳 의사들 조차 가기를 꺼려하는 산간오지에 쿠바의 의사들이 찾아간것은 UN에서도 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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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허리케인으로 중남미 국가들이 심각한 피해을 입자 쿠바는 의료지원팀을 해당국가에 파견하지만 쿠바의사들은 또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쿠바 의료지원팀은 계속해서 그 국가에 머물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남아 의료지원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이 필요했다.  결국 쿠바는 1999년 쿠바에 외국학생들을 위한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을 설립한다.  이학교에는 라틴아메리카 24개국,아프리카4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쿠바에서 무료교육과 숙소제공,용돈까지 받으면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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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그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로 의사가 되고 싶어도 될수 없었지만 쿠바에서 제공한 무료교육 프로그램으로 의사가 된후 자신들의 조국으로 돌아가 빈민간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하게 된다.

 

 

 

 

 

 

 


mms://cast.kdlp.org/kdlp/special/cuban_doctors.wmv

 

동영상은 클릭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입니다.


 - 체 게바라 -


 

 

1959년 쿠바혁명이 성공한 당시 전국의 의과대학은 1개, 의과교수는 16명.
의사는 6천명 그 나마 절반은 미국으로 망명.

모든 것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지금의 선진의료국가로 성장했다.
우수한 인재를 뽑아 의사를 만들고, 의사로 성장한 사람들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진료를 보게 함으로써 지금의 쿠바는 만들어졌다.

 

1963년 소아마비 퇴치(한국 2000년)
1986년 심장이식수술.(한국 1992년)
1996년 홍역퇴치
1959년 쿠바혁명 성공 전 영아사망율 1000명당 60여명
현재 1000명당 5.6명 (미국 1000명당 6.9명)

 

의술이 발전하고 무상의료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람중심의 의술을 펼치며 주민들 가까이에 의료기관과 의사들이 있으면서 지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주민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쿠바의 핵심의료 체계인 가정의 제도는 가정의 의사 한명이 담당구역 내의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제도 말한다.
아파트 1층에 자리할 정도로 주민들 가까이에 진료소가 위치한다.
진료소는 150가구 600여명을 돌본다.
의사가 병의 치료, 예방, 병을 일으키는 정서적, 환경적 요인까지 파악하여 주민을 돌보며 주민건강의 80%를 예방한다.

1차 가정의 에서 치료가 되지 않으면 2차 지역진료소로 그리고 큰 수술 등을 받으려면 3차 종합병원으로 간다. 비용은 모두 무료이다. 1차->2차->3차 진료단계를 가진 쿠바는 99%이상의 국민이 골고루 의료해택을 받는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하는 쿠바.
1991년 소련 붕괴이후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으로 찾아온 경제 위기
그러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대안을 찾고자 정부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하여 국방비의 55%삭감으로 국민의 건강,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은 피부색, 성별, 종교, 국적에 관계없이

의료해택을 받을 똑같은 권리가 있다

쿠바헌법 43조

 

모든 국민은 무상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국민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쿠바헌법 50조

 

쿠바는 자국민의 건강 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도 의술을 펼치고 있다.

(1963년 이후 세계 101개 나라에 연인원 10만명 이상의 의사를 지원)

같은 인간으로서 단순히 우리가 가진 것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의술을 펼치는 일 뿐만 아니라 쿠바의 사람들은 Made in 쿠바인 의사들 처럼 그 나라에서 그 지역에서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의사를 양성하는 인력양성도 같이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기존의 자신의 직업으로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와의 연대, 인류에 대한 사랑과 봉사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새롭게 삶을 바라보며, 새로운 눈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쿠바의 사람들이 인류의 정신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조상으로 물려받은 연대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이웃나라 국민을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 한다는 조상들이 물려주는 연대의 정신 말이다.


기적의 작전

 :2004년부터 베네수엘라 시각 장애인을 위해 쿠바에서 시행하는 무료 시력회복 수술 프로그램

20여 분 수술시간으로 치료되는 되는 백내장 치료수술 그러나 사람들은 600달러라는 돈이 없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 전국의 3천명 이상의 되는 사람들이 말이다.

우선 베네수엘라의 사람들 부터 쿠바의 의사들은 안과의술을 펼치고 있다.

 

쿠바에서 베네주엘라로 베네주엘라에서 에콰도르에서
카리브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된 희망은
지치진 않은 발걸음으로 더 먼곳 더 그늘 진 곳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다.


'건강은 더 이상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전 민중의 자산이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베네주엘라

 

바리오 아덴트로 : 2003년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 빈민지역 의료시설 건립프로그램

아덴트로는 마을 깊숙이라는 뜻이다. 이 의료시설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베네주엘라 의사중 참여한 의사는 전국의 50여명 뿐이였다.

적은 참여율의 이유는 빈민가로 들어가야 하기도 하며, 그 수고에 비해 국가에서는 적은 급여를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네주엘라의 의사는 전국의 50여명만이 참여했다.

그 빈자리는 쿠바의 의사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쿠바의 의사들은 연대의 정신으로 베네주엘라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면서 몇 안되는 함께하는 베네주엘라의 의사들도 변화시키고 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을 때, 돈이란든지, 첨단의료장비라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뭐든지 시도를 해보고 자신의 가진것을 가지고 진료를 해야한다라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말하며 동료의사들을 변화시킨다.


"의사의 특권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의 순수한 미소, 부모의 감사하는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요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누구도 건강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 권리를 지켜주려고 여기, 이 나라(동티모르)에 왔습니다"


"내가 힘들게 의학공부를 했던 그 시간이 다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의사입니다."


"한 사람이 일상에서 겪는 고통을 자신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입니다."

 

 

국민이 아프면 국가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자원을 쏟아야만 한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으며.

사람이 중심에 있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은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몇가지 장면들



 


 이광호 / SBS 피디








SCENE #1, 메모지

 

쿠바의 가정의를 취재할 때였다. 정성껏 환자를 치료한 의사는 책상위에 놓인 작은 메모지에 처방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특별한 규격이 있는 메모지가 아니라 의약품회사나 의료기기 회사에서 판촉용으로 주는 메모지에 2차 진료소에서 필요한 처방 내용을 적고 사인해서 환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메모지를 처방전으로 쓴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막상 내 눈 으로 보니까 약간 민망해지기도 하고, 어렸을 때 우리 집의 가난을 친구들에게 들켰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래, 여긴 1차 진료소니까 그럴거야’하고 생각했는데 쿠바 어느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이라는 종합병원에서도 여지없이 메모지는 애용되고 있었다. 엑스레이, MRI, 혈관조영기 등 치료에 필요한 장비들은 가장 최신의 것으로, 그것도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막혀 먼 길을 돌아 비싼 값에 수입해 쓰면서 처방전은 그 기계들이 들어올 때 덤으로 오는 판촉용 메모지를 쓰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이 메모지 처방전에서 쿠바의 정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컴퓨터에서 깔끔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처방전을 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쿠바 의사들이 메모지를 쓰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고 환자들 치료에 필요한 약품이나 설비에 집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상 의료의 가치를 지키는 작은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모여 경제 위기 때 의료 분야의 후퇴를 막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삭감해서 그 돈을 의료 분야에 투입하는 결정을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혹시 쿠바에 여행 가서 병원에 갈 일이 생긴 분들이 있으시다면 메모지에 쓴 처방전을 받았을 때 나처럼 민망해 하거나 메모지 때문에 의사들의 실력을 깎아보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 메모지에도 쿠바 혁명 50년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SCENE #2, 보건부 차관

 

 

 

베네수엘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직 베네수엘라의 쿠바 의사를 취재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협조를 부탁해 놓은 상태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취재진을 먼저 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사실 쿠바의 의료를 취재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쿠바의 음악이나 유기농을 취재하는 것과 달리 의료 분야는 쿠바 사회주의를 직접적으로 취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워낙 많은 서방 언론들이(한국의 한 방송국도 포함해서) 이런저런 감언이설로 취재 허가를 받은 후 쿠바를 비난하는 뉴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쿠바 당국으로서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미국과 혈맹 관계’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에서 온 피디를 무엇을 보고 믿을 수 있겠는가?

 

 

 

약속 장소는 쿠바에서 온 관리들이 묵고 있는 호텔. 베네수엘라에 파견 나온 의사들의 일을 봐주는 본부로 쓰고 있는 호텔은 우리나라 모텔만도 못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러 나온 사람은 후줄근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통역을 통해 우리의 기획 의도를 듣고 난 이 아저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일부터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취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일이 잘 안 풀릴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싱겁게 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것’이었다. 취재하고 싶었던 쿠바 의사나 바리오 아덴뜨로 병원,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 졸업생 등 취재원을 소개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이 다니며 밥까지 챙겨 주었다(!) 우리가 병원을 취재하고 있는 동안 진료가 없는 쿠바 의사들은 병원 식당에서 우리에게 줄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벗어던진 의사들이 나를 위해서 밥을 해주다니~ 상상도 못했던 호의를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쿠바 의사, 간호사들에게 격의없이 “알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아저씨는, 후줄근한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입고 우리가 뭐 하나 불편해 할까봐 꼼꼼히 챙겨주시던 이 아저씨는…, 쿠바의 보건부 차관이었다!

 

 

 

얼마 전에 누군가 내게 “구소련이나 동구권 나라들처럼 관료들이 특권을 누리고 부패하지는 않으냐”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알도 같은 아저씨가 보건부 차관을 하고 있다는 건 쿠바의 사회주의에 희망을 가져도 좋을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SCENE #3, 인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내가 가진 의문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이었다. 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면서 남들을 도와주는 걸까? 왜 이 사람들은 의사가 되고서도 힘든 길을 택할까?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 졸업생들은 고국에 돌아가면 의사가 되어 돈도 벌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오지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는 걸까?

 

 

 

쿠바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나는 이 질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연대 의식은 우리 혁명의 정신입니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배워 왔습니다.”, “우리의 연대 의식은 동양인들이 어른 공경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몸에 배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면서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윤 추구가 최고의 가치라고 세뇌되고 있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배우고 사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혁명 후 50년 만에 이뤄졌다. 가치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이윤 추구의 동기를 없애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게을러서 주민들에게 거부당한 의사도 있고 해외에 나왔다가 안 돌아가고 망명한 의사도 있다. 달러를 벌기 위해 길에 나선 사람들도 있고, 정부 물건을 빼돌리는 사람도 있고, 자기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관료주의에 빠진 공무원도 있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다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또 다른 환상일 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쿠바기행문에 쓴 ‘가난하지만 행복이 얼굴에 가득한 사람들’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우리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한 달이 채 안 되는 취재 기간 동안 내가 본 것만으로 한 사회를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애당초 내가 풀려던 의문은 풀지 못할 숙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다. “도덕적 동기로 행동하는 인간이 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져볼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희망을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만들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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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깃꾼 박인상은 이거 보고 깨닫는 것 없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