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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웹의 창시자, “괴물”이 된 인터넷 뜯어고친다 : 솔리드 포드, 버너스 리

웹의 창시자, “괴물”이 된 인터넷 뜯어고친다

[한겨레] ‘월드와이드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 경

구글·페이스북 등 지배하는 웹 구조 바꿀

새 스타트업 ‘인럽트’ 출범 계획 밝혀

인터넷을 혁명할 ‘작은 한 걸음’ 될까



‘솔리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인럽트’의 데이터 브라우저 모습. 인럽트(Inrupt) 제공 월드와이드웹(WWW) 기술의 개발자인 팀 버너스-리 경이 감시 정부와 거대기업의 ‘중앙집중형 괴물’이 된 인터넷을 뜯어고칠 새 스타트업을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8일(미국 현지시각) 블로그를 통해서 “나는 항상 웹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웹은 불평등과 분리의 엔진으로 변해 버렸다”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스타트업 ‘인럽트’(Inrupt)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팀 버너스-리 경의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폴 클라크(Paul Clarke) 제공 버너스-리는 1989년 하이퍼텍스트 기술을 개발하고 첫 시범에 성공해 ‘월드와이드웹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기술이 모든 이들을 보다 자유롭고 공평하게 정보에 접근하게 하여 권력의 탈중앙화를 가져오리라는 비전에서 무료로 공개해 현재의 인터넷 구조와 번성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거대기업이 자신의 부를 위해 데이터를 끌어모아 관리하고 정부가 이들과 결탁해 시민을 감시하는 도구로 전락시키자 인터넷을 “괴물이 되었다”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말에 멈추지 않고 현재 교수로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동료 등과 함께 현재 인터넷 구조를 혁신할 새로운 플랫폼 ‘솔리드’를 개발했다. 솔리드 기술이 기존 인터넷과 다른 점은 개인정보를 비롯해 개인이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의 통제권이 거대기업이 아니라 각자의 통제 속에 놓인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보에 누가 접근할 수 있고 어떻게 쓰일지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버너스-리는 “데이터는 모든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 솔리드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웹은 소수 기업이 개인정보를 축적·통제하는 중앙집중형 구조다.

인럽트는 이런 솔리드 플랫폼을 전 세계 개발자, 해커, 인터넷 운동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이다. 솔리드 기술 자체는 누구나 무료로 쓰고 개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오픈 소스로 두되, 이 기술의 도입을 돕고,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 조직 역할을 인럽트가 맡겠다는 계획이다. 오픈 소스 운영체제 ‘리눅스’ 등이 이런 공공-상업 생태계를 구축해 번창한 사례다. 버너스-리는 매사추세츠 공대로부터 1년 동안 안식년을 얻어 인럽트 공동 창업자로서 이 기간에 솔리드를 전파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솔리드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버너스-리는 기술 매체 <패스트컴퍼니>에 솔리드를 활용한 인럽트의 데이터 브라우즈 모습을 공개했는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들과 그 겉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과 비슷한 자기 정보 페이지, 구글 캘린더와 비슷한 일정 서비스, 카카오톡과 비슷한 메신저 서비스 등으로 구성된다. 별도의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존의 인터넷상에서 작동하는 플랫폼일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여기서 생성되는 모든 정보가 기업들의 서버가 아니라 ‘솔리드 포드’라는 개인 저장소에 저장되고 개인이 어떤 기업에 제공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개발자들이 참여하면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생태계가 구축되리라는 게 버너스-리의 기대다. 그는 “예를 들어 솔리드를 기반으로 한 아마존의 ‘알렉사’ 같은 음성 비서, ‘찰리’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각 개인에게 돌려주겠다는 탈중앙형의 구조가 그의 구상대로 잘 굴러간다면, 중앙집중화된 데이터와 이에 기반을 둔 서비스로 수십조 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비즈니스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당연히 이런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에 대한 <패스트컴퍼니>의 질문에 버너스-리는 “(솔리드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을 기술일지 아닐지에 대해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그들의 동의를 얻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공룡 기업들이 강고하게 자리 잡은 현실에서 작은 스타트업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마침 그가 인럽트의 출범을 밝힌 블로그 글에 단 제목은 ‘웹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이다. 달을 밟은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이 남긴 “이는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