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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천안함 토론회 4 - 곽동기 ( 민권연구소 )


 

 

분석은 없고 주장만 있는

천안함 조사

 

곽동기(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 정부발표 문제

 

1) 6 원칙이 부정되다.

천안함 사건에서는 6하 원칙이 모조리 부정되고 있다. 먼저 천안함을 “누가” 침몰시켰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다. 민군합동조사단 조차도 이른바 1번 어뢰에 대해 “이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고 밝히는 수준이다. 그나마 러시아조사단은 1번 어뢰 파편의 부식정도가 심해 천안함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견해를 피력, 합동조사단 주장은 신뢰도에 흠집이 생긴 상태이다.

두 번째, 천안함 사건은 “언제”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아리송하다. 정부는 처음에 사고 발생 시각을 945분이라고 했다가 다시 930, 마지막으로는 922분이라고 하였다. 전술지휘체계(KNTDS) 기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고 발생 시각을 자꾸 번복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이후 민간진영이 밝혀낸 사실에 의한다면 천안함 승조원이 부친과 통화중 ‘지금 비상’이라며 전화 끊은 시각이 16분이며, 백령도 방공 33진지에서 ‘큰 소음’을 들은 시각도 16분이고, 2함대 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에 최초 상황발생 보고한 시각은 15분이다. 따라서 사고 발생 시각을 15~16분에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922분경에 두 번째 사고가 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듯하다.

세 번째, 천안함 사건은 “어디서” 침몰되었는지 애매모호하다. 문화방송(MBC)43일 보도한 인천해경 상황보고일지에 따르면 최초 사고가 발생한 곳과 최종 침몰 지역 위치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이 발표한 최초 사고 장소는 위도 3755, 경도 12437이며, 해경 상황보고에 따르면 천안함 좌표가 위도 3750, 경도 12436으로 군당국 발표에 비해 남쪽으로 약 9km 지점이다. , 부함장이 인천해경 상황실에 통보한 위치는 군 당국이 발표한 위치보다 약 2km 서쪽이었다.

고 한주호 준위는 이른바 “제3부표” 지대에서 사망하였는데 이 지역은 천안함 함미나 함수 부분과 동떨어진 지역이다. 정부는 제3부표지점이 아니라고 하는데 정작 가족들은 그 곳에서 위령제를 지냈으며 고 한주호 준위와 함께 수색작업을 한 다른 유디티 대원도 사망장소가 제3부표지점이 맞다고 증언하였다.

추가적으로 유디티 대원은 제3부표지점 해저에 정체불명의 대형구조물이 있다고 증언하였는데 그것에 대한 분석이 없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곳에서 미군 헬기로 추정되는 군용헬기가 미확인 물체를 건져 올려 천안함 파편을 싣는 독도함이 아닌 남쪽 어딘가로 가져갔는데 무엇을 어디로 가져간 것인지에 대한 해명이 없다.

그나마 “무엇을”에 대해서는 “천안함”이라는 대상이 분명하지만 “어떻게”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장이 존재하는 사실이다. 비접촉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폭발설, 암초와의 충돌설, 피로파괴설, 기뢰폭발설, 미군잠수함과의 충돌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왜”에 대한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북한으로 규정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한 분석이 없다. 작년 1110, 서해상의 충돌에서 북한해군이 한국해군에게 공격 당했는데 그 보복성 행동이라는 추측, 북한의 가중되는 경제난 때문에 북한주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 이후 북미평화협정체결 논의가 쑥 들어가 버린 채 작년 말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 등 북-미간 대화채널이 차단되었다는 점, 남북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남북경제협력이란 단어를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남북협력기금이나 대북식량협력 같은 정책은 완전히 단절되었고 그로 인한 북한의 손해가 상당하다는 점, 20102, 북한은 대풍국제투자그룹 이사회를 개최하면서 향후 10년간 4000억 달러의 외자유치를 제시하였지만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외자유치 작업이 무산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없는 채 파란 잉크로 “1번”이라고 쓴 쇳조각을 가져와서는 “북한”이 했다고 하니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 직접 증거가 공개되지 않는다.

 

천안함 관련 해명이 이렇게 더딘 이유는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에 의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직접증거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TOD 동영상이다. 사실 백령도 해안가에서 천안함의 기동을 촬영한 TOD 동영상이 공개된다면 천안함의 침몰과 관련한 모든 논란은 일거에 사라질 수 있다. 정부와 합동조사단이 주장하는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면 폭음과 함께 대형 물기둥이 솟구쳤을 것이고 암초충돌, 피로파괴였다면 물기둥 없이 천안함이 침몰하였을 것이다. 기타 제3물체와의 충돌설도 TOD 영상만 공개한다면 의혹의 대다수를 해명할 수 있다.

군 당국은 처음에 열상감시장비 영상이 없다고 하다가 여론이 빗발치자 331유일한 TOD 영상이라며 40분짜리 영상을 편집해 공개하였고, 전체 공개 요구가 높아지자 41일 전체 영상 공개라며 더 이상의 영상은 없다고 하였다.

이후 국방부는 지난 330일과 41일 두 차례 동영상을 공개한 뒤 의혹이 일자, 합조단에서 47일 천안함의정상 기동 장면(946초부터 3초간) 이미 분리된 함수-함미 장면(92418초부터 11초간) 함수 침몰 장면(92520~1093) 등 세 가지 동영상을 추가로 공개한 바 있다.

국방부 주장의 핵심은 하필이면 천안함이 침몰하던 그 시각에 TOD 동영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도 살인사건 현장에 찍힌 CCTV 화면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처음에는 CCTV가 없다고 잡아떼던 경찰이 용의자가 나타나기 전의 CCTV 화면을 3초간 보여주고 20분을 건너뛰어 살인이 끝난 다음 피해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 화면을 보여주면서 하필이면 피해자가 살해당하던 그 순간의 CCTV 영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증거는 교신기록이다.

먼저, 왜 천안함은 그곳에 있었는가. 해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초계함 규모의 군함은 해안에서 최소 5마일 (8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작전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의 수심이 얕은 곳으로 갔는가. 백령도 현지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침몰 지점은 까나리 어장으로 평소 초계함이 다니지 않는다고 하며, 김태영 국방부장관도 331풍랑이 셌기 때문에 일종의 피항 차원이라고 발표하였다. , 천안함은 당시 비정상적인 구역에 있다가 침몰한 것이다. 그런데 47일 조사단은 정상경비구역에서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발표하였다. 누구 말이 맞는가. 이에 대해서는 천안함과 관련한 교신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2. 천안함의 진실

 

1) 합조단의 증거 가운데 사후처리가 의심되는 정황

 

심지어 인터넷상에서는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 행위를 뛰어넘어 증거의 사후 가공, 내지는 증거 왜곡을 시사하는 주장들도 다수 발견된다.

 

대표적 사례가 “1번 어뢰”를 나타내는 쇳조각이다.

 

연합뉴스의 사진을 보면 “1번”이라고 쓴 쇳조각 인근의 기둥 부근의 녹이 둥근 형태가 아니라 직각 형태로 슬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녹을 사포로 닦아내고 그 위에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오고 있다. 적어도 바다에서 인양한 이른바 “추진체”를 사포로 닦았을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의혹은 천안함의 스크루이다.

스크루 날개면을 무언가로 닦아 낸 듯이 표면상태가 다르다는 의혹을 가질 수 있다.

 

세 번째 의혹은 천안함 함체에 나타났던 긁힌 자국(스크래치)이다. 천안함 인양과정에서 아래 사진에서 표기된 것과 같이 함체를 따라 기다란 긁힌 자국이 발견되어 논란이 일었다. 버블제트에 의한 함선침몰의 경우는 이러한 긁힌 자국이 길게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 천안함 인양당시 선체에 나타난 스크래치>

 

이를 지난 서해교전 당시 건져 올린 참수리호와 비교해도 차이는 명확하다. 바다 속에 53일간이나 있었던 참수리호는 인양 후에도 함선 바닥이 매우 깨끗했던 반면 바다 속에 20일밖에 있지 않았던 천안함은 함선 바닥이 상당히 긁혀 있는 것이다.

결국 천안함 함선의 바닥이 무언가와 심한 마찰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조사단에 참여한 뒤 천안함을 직접 봤는데 아랫부분이 (인양 때 사진에 나왔던 모습에 비해)깨끗해져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518일 오전 민주당 최문순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주장)

 

 

2) 합조단 주장 자체의 모순점

 

합동조사단의 주장에 여러 과학기술적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합동조사단이 520일에 보여주었던 컴퓨터 시뮬레이션(computer simulation)이다. 컴퓨터 시물레이션은 가상의 공간에 천안함 침몰과 유사한 값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대입해 넣고 그 당시에 예측되는 충격파나 함체가 받는 충격 등을 “예상”해 보는 보조적 차원의 연구방식이다.

고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그 자체로 정황분석의 증거가 될 수 없으며 주변 환경을 가정하는 경우에 따라 시뮬레이션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침몰 당시의 조류가 초속 3m라고 단순 가정할 경우와 초속 4m로 가정하는 경우 결과를 달라질 수 있으며 250kg짜리 중어뢰가 성공적으로 폭발하였을 경우와 80%밖에 폭발하지 못하였을 경우도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한 가지 사례에서 시뮬레이션이 맞아졌다고 해서 그 시뮬레이션이 인정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변수를 대입하였을 때 반복적으로 그 예측성이 인정되어 통계적 치수로 보여질 때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유사실험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폭발을 재연한다고 하는 것은 과학자다운 자세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합동조사단이 버블제트의 증거라 주장하는 압력흔적, 디싱(dishing) 현상이다. 천안함의 함안정기가 올록볼록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강력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고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라며 버블제트에 의한 피격을 입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함 안정기 인근의 가스터빈실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오히려 압력흔적이 작다는 점이다.

함안정기에 비해 골격이 훨씬 성김에도 불구하고 압력으로 들어간 정도는 훨씬 미미하다. 사실 압력현상이 나타나려면 버블제트 어뢰가 폭발한 위치라는 가스터빈실의 표면에 압력흔적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핵심적인 논란거리는 과연 “버블제트 어뢰로 가스터빈실을 따로 떨어뜨려내면서 천안함이 3조각으로 부서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버블제트 어뢰로 천안함이 3조각으로 절단되는 현상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3. 진실규명에 대한 제안

 

첫째로는 가장 핵심적인 증거를 밝히는 요구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TOD 동영상 공개와 더불어 교신기록을 공개한다면 천안함 사고의 실체에 더욱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천안함 생존 승무원들의 당시 상황 진술을 전반적으로 폭넓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객관적 증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 목격자의 진술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끝으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국제사회에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검열단을 받아들이고 중국, 남북한, 미국 등 관련당사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천안함 재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에 따라 천안함 문제를 규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천안함 피격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이들 조사단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합동조사를 통해 설득작업을 벌이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이 표명한 “검열단”이 이명박 정부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해도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라면 일단 “합동조사”를 받아들이는 전제로 남북 실무급 협의를 열고 ‘검열단’의 명칭변경을 요구하면 될 일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설득되지 않은 천안함 조사보고서를 두고 서해에서 대포만 꽝꽝 쏘아댄다고 해서 천안함 의혹이 규명되었다고 보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